[겨울나무] 5화 — 내 이름1화에 이렇게 썼다. 나는 그때 쓰던 대화명을 여기서 쓰지 않았다.거짓말은 아니었다. 다만 왜 안 썼는지는 안 썼다.* * *그때 내 대화명은 미루나무였다.겨울나무를 처음 만난 날, 그 애가 대화명이 예쁘다고 했다. 나는 우리 학교 운동장에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그냥 그걸로 했다고 말했다. 그 애는 자기도 나무라고 했다.그게 다였다. 그 뒤로 우리는 서로 이름 얘기를 한 적이 없다.* * *여기 처음 들어와서 대화명을 정할 때 나는 미루나무를 치다가 지웠다.세 번쯤 그랬다.무서웠던 것 같다. 그 이름으로 여기 앉아 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하면, 그때는 정말로 끝난 게 되니까. 이름을 안 쓰고 있으면 아직 안 해본 게 하나 남아 있는 셈이었다.그래서 스물몇 해 동안 안 해본 채로 뒀다.* * *어제 그 사람이 답글을 달았다. 연락했어요. 답은 아직 없어요. 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, 안 보고 있을 수도 있고요. 근데 보내고 나니까 좀 이상하게 후련했어요. 답이 오든 안 오든 이제 제 쪽 일은 끝난 것 같아서요.* * *제 쪽 일.나는 그 세 글자를 오래 봤다.내 쪽 일이 뭐였는지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. 나는 늘 그 애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궁금해했다. 스물몇 해를 그것만 궁금해하면서,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는지는 안 봤다.* * *그래서 이렇게 쓴다.미루나무입니다.그 시절 열두시에 여기 앉아 있던 사람이고, 지금도 가끔 그 시간에 깨어 있습니다.혹시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그때 그 화면에 있었다면, 아무 말이나 남겨주세요. 나를 몰라도 괜찮습니다. 그 시절에 열두시를 기다려본 적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.기다리는 건 이제 잘합니다.* * *겨울나무, 나 여기 있어.(다음 화에 계속)