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겨울나무] 3화 — 그 겨울지금 와서 돌아보면 징후는 있었다.마지막 두 주쯤, 그 애는 늦게 왔다. 열두시가 아니라 열두시 반, 어떤 날은 한시. 나는 기다렸다가 왜 늦었냐고 물었고, 그 애는 그냥이라고 했다.한 번은 이렇게 썼다. 너는 좋겠다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. 나는 더 안 물었다. 열여섯의 나는 남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 애였다.* * *그 애가 마지막으로 접속하기 나흘 전에, 우리는 처음으로 싸웠다.싸웠다고 하기도 뭐하다. 나는 시험을 못 봤다고 투덜댔고, 그 애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이렇게 썼다. 그런 걸로 힘들어할 수 있는 게 부러워그 문장이 화면에 뜨고 나서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. 화가 났던 것 같기도 하다. 뭘 안다고 그러냐, 그런 말을 쓰려다가 지웠다.대신 즐팅이라고 쓰고 나가버렸다.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.* * *다음 날 그 애는 평소처럼 왔다.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급식 얘기를 했다. 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답했다.우리는 그런 걸 잘했다. 얼굴이 안 보이니까 표정을 숨길 것도 없었고, 서로 없던 일로 하기로 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됐다.그게 좋아서 거기 있었던 건데, 그것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못 물어봤다.* * *나흘 뒤에 그 애는 있잖아 나 사실 까지 쓰고 사라졌다.나는 그게 그날 하려던 말인지, 며칠 전부터 하려던 말인지 모른다. 어쩌면 훨씬 전부터였을 수도 있다.너는 좋겠다. 그런 걸로 힘들어할 수 있는 게 부러워. 늦게 오는 날들.나는 그 조각들을 스물몇 해 동안 이리저리 맞춰봤고, 맞춰질 때마다 다른 그림이 나왔다. 어떤 그림은 견딜 만했고 어떤 그림은 아니었다.* * *어제 그 사람이 답글에 이렇게 썼다. 그때 물어봤으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?나는 오래 생각했다.열여섯의 나는 아마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. 위로하는 법을 몰랐고, 남의 힘든 얘기를 들으면 도망가고 싶어지는 애였다.그래도 도망은 안 갔을 것 같다. 그냥 화면 앞에 앉아 있었을 것 같다.그거라도 됐을까.(다음 화에 계속)